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드로 윌슨 (문단 편집) == 여담 ==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무단 통치]]에 반발한 [[3.1운동]]이 펼쳐지게 되고, 이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제국은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기 때문에 [[긁어 부스럼]] 만들기도 뭐하고 해서 다른 [[식민제국]]인 열강들이 획득한 식민지들처럼 합당하다고 간주되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는 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사실 한국에 영향을 미친 민족자결주의는 윌슨뿐만 아니라 소련의 [[레닌]]이 주창한 것도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개념 자체가 "주의"와 같은 사상 체계는 아니기 때문에 레닌 역시 먼저 제창했다고 볼 순 없고, 이미 [[민족주의]]로서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윌슨의 시대 때 떠돌던 민족자결주의의 근원은 당시 국제 공산주의 연합이었고, 윌슨은 프로파간다를 교묘히 잘 이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당시 여기에 영감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은 [[호치민]].[* 자세한 내용은 윌슨의 순간 (The Wilsonian Moment)-에레즈 마넬라 (Erez Manela),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1-2장 참고.][* 물론 소련은 카라한 선언을 통해서 [[제정 러시아]] 시기에 [[청나라]] 및 [[군벌]]들과 맺었던 불평등한 비밀협정을 완전히 무효화했고, 강제로 확보했던 영역도 무상반환했다. 이때 러시아가 건설한 철도도 무상반환하기로 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발생하면서 중소분쟁의 원인이 되긴 하는데, 이 시기의 이런 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단적으로 1차대전에 승전국으로 참가한 중국과 일본 가운데서 일본의 입장만 반영된 결론이 [[베르사유 조약]]에서 도출되면서 중국이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이런 소련의 지원은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에 모두 영향을 끼쳤다. 이때의 대결구도는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대 제국주의''' 구도였기 때문이다. 독립된 나라 대부분은 소련에 편입되거나(소련 자체가 그 목적으로 세워진 연합국가이므로) [[몽골]]과 같은 위성국이 되었다.] 여러 기록을 가진 대통령이기도 한데 사상 '''최초로 유럽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자, 앞에서 봤듯이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대행한 것이 아닌 부인이 대통령직을 대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의회에 보내는 첫 번째 메시지를 직접 의회에 나가 읽음으로써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 이래 사라졌던 관습을 다시 부활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소위 '연두교서'라 일컬어지는 행위로 현대 미국 정치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훗날 한국의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되는 [[이승만]]에게 [[한국인]] 최초의 [[미국]] [[박사]] 학위[* 참고로 이승만의 박사 논문 제목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Neutrality as influenced by United States)"이었다.]를 준 사람 역시 윌슨이었다. 우드로 윌슨이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에 그는 이승만의 은사로서 국제 질서에 관한 그의 신념과 관점은 이승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둘의 관계는 사적으로도 상당히 각별했는데, 이승만은 총장인 그의 집에 빈번히 찾아가 그의 가족과도 자주 어울렸으며 그들은 이승만이 감옥에서 겪은 수난과 앞으로의 [[독립]]에 대한 계획과 포부에 대해 퍽 감동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 그는 가끔 교내에서 이승만을 방문객에게 소개하면서 "장래 한국 독립의 구원자"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하였다. 윌슨은 그에게 여러곳에서 연설할 기회를 베풀기도 했는데 1908년 12월 15일, 윌슨은 이승만을 위해 써 준 추천서에서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許政, 《雩南 李承晩》, 1970, 太極出版社, p. 103-104] >[[이승만]] 씨는 프린스턴 대학원의 학생이며, 우수한 능력과 고결한 성품으로 우리들에게 호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놀랄만큼 자국인 한국의 현재 상태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동양]]의 전반적 정세에 대해서도 정통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정세를 일반 청중에 대해서도 개진했습니다. 그는 애국심이 강한 청년으로 동포에 대해 열렬하고 유익한 일꾼입니다. 동양에 있어서 연구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익을 직접적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나는 기쁘게 그를 추천합니다. 1912년 6월 5일, [[105인 사건|일제의 탄압]]으로 도미한 이승만은 윌슨의 둘째 딸인 [[https://en.wikipedia.org/wiki/Jessie_Woodrow_Wilson_Sayre|제시 윌슨]](Jessie Wilson Sayre)을 만나 라이트하우스(Lighthouse)에서 모임을 가졌고, 자신을 [[감리교]] 총회의 한국 대표자 자격으로서 부친을 만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1912년 6월 19일, 마침 [[프린스턴 대학교|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미국의 영향을 받은 국제법적 중립성」]이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앤드루 웨스트(Andrew F. West) 학장에게서 그것을 한 권 받아가지고 그 날 오후 4시 50분, 당시 [[뉴저지 주]] [[주지사]]였던 우드로 윌슨이 기거하고 있는 주지사 여름 별장(cottage)이 위치한 시 거트(Sea Girt)로 향했다. 오후 6시 44분, 목적지에 도착하여 윌슨을 찾아가 자신의 논문 단행권을 선물로 드린 후, 찾아온 뜻을 말하니 그는 여간 반기지 않았다. 이승만은 그가 보고 온 한국의 참혹한 실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일본 제국|일본]]의 [[제국주의]]가 얼마나 [[동양]]의 평화를 해하고 있는지를 프린스턴 은사였던 그에게 강력히 피력하였다.[*a 許政, 《雩南 李承晩》, 太極出版社, 1970, p. 114-116][*b 李承晩, David P. Fields 외 공편, 《Log Book (국역 이승만 일기 : 1904~1944)》,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5, p. 54-55][*c 徐廷柱, 《미당 서정주 전집 19 전기 : 김좌진 장군전, 우남 이승만전》, 은행나무, 2017, p. 398-400] 또 그는 [[105인 사건]]으로 촉발된 한국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즉각 중지하고 폭넓은 [[종교의 자유|종교적 자유]]를 허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였다.[* 柳永益, 《이승만의 삶과 꿈》, 中央日報社, 1996, p. 86-93] >'''이승만''' : 한국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는 성명서를 만들고자 하니, 거기에 동의하는 서명을 꼭 해 주시길 바랍니다. > >'''윌슨''' : 당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열의에는 무엇이라고 치하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미국 대통령]] 아닌 한 개인으로서는 거기에 물론 서명해 드리고도 싶소. 서명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일을 도와주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미국/정치|미국의 정치]]를 위해서는 아직 내가 당신의 성명에 도장을 찍을 때는 아니오. 그러나 언제 우리가 같이 일할 때는 반드시 올 것이니 그것을 믿으시오. 그렇잖아도 나는 벌써부터 당신의 조국 한국을 포함한 [[민족 자결주의|모든 약소민족 국가들의 일]]을 생각해 오고 있는 중이오. > >'''이승만''' : 현상 유지의 정치보다 인류 정의와 인도적 미래를 위하여 꼭 본인의 편이 되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 >'''윌슨''' : 물론이오. 그렇지만 모든 일의 해결엔 반드시 그 적당한 때가 있는 것이오. 하여간 내 당신의 갸륵한 뜻을 명심해 두리다. 그리고 당신은 나 한 사람의 도장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미국 전 국민들의 마음의 도장을 먼저 받도록 하시오. 우리 [[미국인|미국 모든 사람]]은 당신의 그 [[애국심|조국애]]에 반드시 감동할 것입니다.[*a][*b][*c] 나름 유명한 [[러시모어 산]] 네 명의 대통령 얼굴에 들어갈 뻔 하기도 했다. 이걸 만들 당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은 쉽게 결정되었고 실제로 처음엔 저 세 명의 얼굴만 새기려고 했지만 빈 바위가 남아 있어서 그 바위에 새겨질 주인공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윌슨이 경합을 벌였던 것. 그러나 루스벨트가 20세기 초 본격적으로 미국을 세계무대에 등장시킨 대통령으로 당시엔 좀 더 평가되는 바람에 루스벨트에게 밀렸다.[* 러시모어산 착공 당시에는 공화당 소속인 [[캘빈 쿨리지]]가 대통령이였는데, 쿨리지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더 많아야 한다며 루스벨트를 밀었다는 소문도 있다.]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부인]]에게 대통령직 대행을 맡긴 [[이유]]도 부인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어서였다고...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까지 지낸 엘리트 학자이고 외모로만 보면 상당히 냉철하고 쌀쌀맞은 인물로 보이지만 의외로 깨는 면이 많고 익살스러운 인물이었다. 가족들과 가장 즐겼던 놀이가 '셔레이드(Charade)'라고 해서 ~~바디랭퀴즈~~ 몸짓으로 단어를 알아맞추는 놀이였는데, 그는 가족들과 이 놀이를 할 때면 '도도한 귀족 [[미망인]]'이나 '외알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영국인'을 너무 리얼하게 흉내내서 가족들을 경악시켰다고 한다. 가장 잘 흉내냈던 것이 술 취한 사람의 휘청거리는 모습[* 영어로는 고무 다리(rubber-legged)라고 쓴다.]의 흉내를 잘 내서 지인들을 많이 웃겼다고. [[노래]]나 [[춤]]에 대한 개인적 취향도 우울하거나 엄숙한 노래보다는 매우 경쾌하고 통통 튀는 종류의 밝은 음악을 선호했다고 한다. 비사교적인 성격이었다고는 하지만 아예 위트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사석에서 윌슨을 만나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인간미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치킨 샐러드를 좋아했으며 대식가였다. 윌슨이 죽었을 때 당시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떠돌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가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 [[모세]]를 만났다. 모세가 윌슨을 보고 "자네가 바로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인가? 안됐구만. 자네가 제안한 14개조 평화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들었네."라고 말했는데 윌슨은 "뭐 그렇죠. 하지만 모세께서 직접 지상에 강림하셔서 '''"인간들이 [[십계명]]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를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라고 받아쳤다고. 이 이야기는 당연히 떠돌던 이야기지만 인간들이 십계명의 정신을 훼손한 것을 보면 자신의 평화원칙에 대한 폄훼는 견딜만 한 것으로 여긴 윌슨의 면모를 잘 나타내는 이야기다. 실제로 윌슨은 자신의 평화원칙을 십계명에 견주기도 했다. ~~신성모독류 甲~~[* 프랑스 강경파 [[클레망소]]의 버전도 있다. "모세는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겼다. 이제 윌슨이 우리에게 14개조를 주지만 그것이 지켜질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1차 대전 중 독일에게 가장 혹독한 피해를 입은 프랑스를 대변하던 인물인 클레망소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다.] [[땅콩]]농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당시 [[조선]]에서 그의 땅콩을 수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족으로 [[지미 카터]] 대통령도 땅콩농장 농장주였다.] --근데 이때면 이미 한일병합..-- 어릴 적 [[조지아주|조지아 주]] [[오거스타]]에 살던 시절, 집 앞에서 노는데 지나가던 행인 한명이 "[[에이브러햄 링컨|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곧 [[전쟁]]난다!"라는 말을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출처 : O'Toole, Patricia (2018). The Moralist: Woodrow Wilson and the World He Made. Simon & Schuster. ISBN 978-0-7432-9809-4.] 윌슨이 KKK단과 친분이 있던 것도 이러한 당시 남부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심슨 가족]]의 [[바트 심슨]]이 자신의 담임선생님인 [[에드나 크라바플|에드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 우드로라는 가명으로 편지를 주고 받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그 우드로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바로 윌슨이다.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마이너 갤러리]]에서 싫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민족 자결주의]]를 주창하여 높은 평가를 받는 [[빅토리아 시대]] 판도의 핵심인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찢어놨기 때문. 특히 [[독빠]]/[[오스트리아빠]] 성향이 강한 갤러들은 윌슨을 [[아돌프 히틀러]]보다 더한 2차 대전의 진정한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역사왜곡성 밈을 공유하기도 한다. 버지니아주 출신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제임스 먼로]], [[윌리엄 헨리 해리슨]], [[존 타일러]], [[재커리 테일러]], [[우드로 윌슨]]]중 유일하게 [[19세기]] 이후에 태어났으며[* 이들 중 유일하게 [[20세기]] 이후에 대통령을 지냈다.], 유일하게 [[성공회]] 신자가 아니다.[* 다만 이들중 [[토머스 제퍼슨]]은 명목상으로만 성공회이고, 실제로는 이신론자이다.] 윌슨은 [[장로회]] 신자. 우드로 윌슨은 가장 최근에 [[일요일]]에 태어난 대통령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